연세대 대학원에 오고 싶어하는 후배에게

안녕하세요, 연세대에서 20대를 보낸 여러분의 선배입니다. 오늘은 2020년 4월 29일이구요. 내일부터 황금 연휴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16년 1월 학부-대학원연계과정을 합격한지 4년이 지났습니다. 세월 정말 빠르네요.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위로 세분의 선배만 계셨는데, 모두 졸업했고, 그동안 함께 고생한 동기 한명이 졸업해서 상해로 돌아갔고, 석사 후배 4명과 진학 희망자 3명이 생겼습니다. 배우는 동안에 엄청 많은 후배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겐 좋은 선배였고 나쁜 선배이기도 했으며, 천사 조교였으면서도 악마 조교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후배들을 응원하는 아저씨입니다. 저 때문에 대학원에 오게 된 이들도, 돌아선 이들도 수십명이 넘어가네요. 오늘 적을 내용들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한 끄적임입니다. 항상 대학원 상담을 받으면 이런 내용들을 알려줬는데 이제 정리를 해두면 한동안은 상담해 줄 일이 많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1. 대학원을 가야할까요?
1-1. 먼저 고민해보자
대학원에 오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뚜렷한 목표 없이 취업이 안될 거 같아서 오는 이들에게 항상 보내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대학생과 직장인의 단점만을 결합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대학원생"
대학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지만, 사실 대학원은 직장이고 삶은 많이 고됩니다. (여긴 동아리가 아니거든요!) 내 공부만 해도 힘든데, 교수들이 일을 시키실 겁니다. 행정실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서류를 제출하라고 할 겁니다. 학생들은 여러분들에게 미친듯이 '새벽에도' 연락할 겁니다. 메일은 물론 번호를 알아내서 카톡을 보내기도 합니다. (조교가 왜 답장이 느린지, 채점이 더딘지 불만을 가지고 계셨다면, 그들이 답장하는 자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대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시는 선생님들(청소/경비 등)에게 대하듯 여러분이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할 존재라는 겁니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저는 주에 70시간을 (공부를 하든 연구를 하든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1년 52주 중에 최소 50주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3500시간씩 3년쯤 지나고 나서야 이 생활이 익숙해 지더군요. 아직 프로가 되지도 못 했는데 일만시간의 법칙이 그렇게 지나가버린 겁니다.

오픈톡 아이디의 이름이 "도망쳐"인 첫번째 이유입니다.
친구들처럼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교수들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당신의 청춘이 사라질 수도 있는 Risk가 분명 있습니다. 그래도 대학원에 오겠냐고 물어보면 10명 중 7명은 돌아섭니다. 이 7명 중에도 누군가는 다시 돌고돌아 대학원에 돌아오게 되겠지만요. 그래도 저는 잡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인생을 위해서. 덴마 - 만드라고라 에피소드와 해당 회차 베플을 참고하시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베댓 : "원장님은 일부러 저런말을 하신겁니다. 한번도 도망쳐보지 않으면, 나중에 먼 훗날 지칠 때 그 때 이런 삶에서 도망칠 걸하고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죠. 다른 선택을 해봐야 어떤 삶이 내가 진정 원한 삶인지 확신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더 늦기전에 도망쳐보라고 하신겁니다.."


1-2. 그럼 알아보자
깊은 고민 없이 대학원에 대한 단순 호기심으로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호기심이 대단해서 그런 후배들이 나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대학원이 대학과 매우 가까운 지리적 위치가 있음에도, 이 현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소수입니다. 대학원 진학률이 낮은 전공일수록 이 경향은 심하고, 많은 대학들이 폐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에도 JSC라는 학술 동아리가 있어서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만 정보가 독점되고 있다는 단점도 있죠. 저도 해당 동아리 가입 권유를 새내기 시절부터 다수의 교수들과 멤버들에게 받았지만 끝까지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원 생각이 있는 분들이 가입하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서도 지원을 잘 해주는 학회입니다.

가입 시기를 놓쳤다면 요즘에는 인터넷에 정리가 잘 되어있으니 걱정 마세요. 김박사넷으로 교수 평가도 공개가 됩니다. 영어지만 이 글도 훌륭합니다. What it means to do research 라는 글인데, 이런 사이트도 많이 추천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장 추천하는 사이트는 사실 이 페이지입니다.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세분께서 적어두신 내용들에 저도 공감하는 내용이 참 많아서, 제가 모든 것을 설명하기 보다는 이 글을 정독하라고 합니다. 책을 사는 학생들도 있는데, 부모님과 함께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이 책을 읽어보셨더라구요.

제가 추천하는 챕터는 "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좋은 지도교수 만나는 법", "에필로그: 뭘 해도 불안하다" 정도가 있습니다.
일부러 링크는 걸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조금 더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1-3. 이제 만나보자
탐색이 끝났다면 이제 직접 본인이 가고 싶은 전공의 관계자들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로스쿨 같은 전문대학과 전문시험들이 부상하면서, 몇 인기 전공을 제외하고는 자대생들에게 대학원 경쟁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교수들의 연구를 검색해봅시다. 최근 출판된 연구들을 "구글 스칼라"를 이용하여 제목과 초록(Abstract)을 살펴봅시다. 본문이 이해가 안 갈 수 있습니다. 권위있는 저널일수록 영어로 쓰여있는데다가 복잡한 수식들과 함께 기술된 경우가 많으니 여러분의 선배도 이해를 잘 못 할 겁니다. 교수들도 본인 전공이 아니면 잘 이해 못 하니까 스스로가 멍청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여러분이 얼마나 관심이 생기는지 살펴보세요. 관심이 없으면... 다른 교수로 넘어가 봅시다. (최근에 연구를 활발히 하시는 분들일수록 홈페이지 업데이트 잘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수업편람을 열어 교수들...이 아닌 조교들의 이메일 주소를 검색해봅니다. 교수보다는 조교들에게 상담을 요청해보세요. 기업에 들어갈 때도 기업 평가 사이트 들어가서 회사에 대해 알아보잖아요? 재직자 선배에게 연락해서 면접 팁 같은 것도 알아보는 경우가 많은데 대학원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죠. 다만 조교들도 바쁘니까 예의는 지켜서, 대학원에 대해 알고 싶다고 잠시 커피 한잔의 시간이라도 내달라고 해보세요. 대부분의 경우, 조교들도 학업의 길을 걸어가는 외로운 존재이기에 흔쾌히 만나주실 겁니다. 카톡이나 메일로 하지 못할 이야기들도, 오프라인에서만 오갈 수 있겠죠.

그럼 이제 교수에게 연락해보세요. 이후 과정은 많이 생략됩니다. 참고자료: 교수님이랑 전공배틀 뜬 썰

베댓 : "질문하러 온 학부생을 보며 교수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ㅋㅋ 이게 웬떡이냐. 굴러들어온 호박이네. 오골계가 털을 직접뽑고 탕속으로 뛰어드는 형국이구나. 그날밤 교수님 기뻐서 잠 살쳤을듯 ㅋㅋㅋㅋ



2. 대학원생이 되어버린 나...
2-1. 준비된 인재로 첫 인상을 주는 것은 어떨까
들어오면 많은 경우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어 계속 배우기 시작할 겁니다. 미리 몇가지 공통사항들을 적어두겠습니다.
1) IRB 교육 이수는 온라인으로 2시간 이수를 해두면 나중에 편할겁니다. 어떤 연구를 하더라도 윤리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에게 꼭 필요하고, 사람과 관련된 연구를 하시는 분들은 실험이나 설문에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기계랑 컴퓨터만 다뤄도 원칙적으로는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연구자 번호도 미리 발급 받으시면 행정처리 할 때 편합니다. 선배 입장에서도 챙길 거리가 하나 줄면 좋잖아요. 여러분이 기업에 입사해도 OT에나 첫 출근에는, HR/IT 팀들이 하는 일들 대부분 신입이 1인의 몫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을 까는 작업을 합니다.
3) 연세 메일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전문적으로 보일 겁니다. 대학원에 오지 않아도 파두시면 요긴할 겁니다. 구글 드라이브 용량도 크고.
4) 드랍 박스는 경영대의 경우 가입해두면 선배들이 폴더 공유를 금방 해줄겁니다. 다년간 제출했던 서류나 데이터, 코드 등을 공유받게 됩니다. <클라우드는 과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5) 경영대학에 진학할 것이라면, YSB NOW에서 지도교수의 성함을 입력해봅니다. 어떤 교수들과 함께 주로 보도가 되셨는지, 어떤 학회를 주로 가시고 어떤 기고문을 쓰셨는지... 열심히 알아봅니다. 논문 보는 것보단 쉬울거에요
6) 하이브레인넷에는 대학원 관련 정보 <장학금>, <공모전> 등이 업데이트 됩니다. 챙겨보면 유용한 순간들이 있을겁니다.


2-2. 도움 받는 것을 두려워마라
사실 이 부분은 어떤 후배를 위해 적은 문단입니다. 자교 출신 대학원생들만의 오픈톡 방이 있는데, 한 분이 어려움을 토로하시더라구요. 학부시절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방황했던, 그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계획에 없던 '대학원생이 되어버린 나'를 이어서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처음 시작할 때 모르는 것이 디폴트입니다. 대신 메모 잘해서 두번 지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긴장해서 좋은 인상을 남기세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교수들과 선배들은 좋아할 겁니다. 천천히 성장하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여러분이 그 과정에서 1을 받았다면 나중에 2로 갚으면 됩니다. 선배나 교수가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 평생 못 갚을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후배에게 2를 주면 되죠. 저는 학부시절 시작한 첫 논문 두편을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Publish 했습니다. 그래서 후배를 도와 논문 한 편을 게재 완료했고 다른 한편은 리뷰 중입니다. 못난 저는 2를 받았으니 2를 주려고 합니다. 저보다 대단해지실 여러분은 2를 받으면 4를 주세요. 저는 그 시절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3. 남들이랑 비교하지 마라
혹시 아직도 연구실이신가요? 오늘 날씨가 좋던데 좀 나가서 하늘도 보고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주말이 시작됩니다. 가끔은 즐기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연구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단거리 스플린트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누구보다 조급했던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 저의 지도교수가 어떤 말씀을 하실지 상상이 됩니다 ㅋㅋ

마지막으로 제가 봤던 두 선배의 이야기를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려합니다.
A 선배는 유학을 준비중이었어요. 당시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학부도 5년을 다니고, 열심히 했지만 당시 작성 중이던 연구는 여러번 Reject을 받았습니다.
B 선배A 선배랑 동기였는데, 그분도 재밌는 연구를 하던 분이었고 운도 좋아보였어요. 최고 권위지는 아니지만 몇 편의 논문도 있고...
예전에는 B 선배처럼 되는 게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A 선배의 Reject 되었다던 논문이 돌고 돌아 결국 최고 권위지에서 최종 게재 완료 되었습니다. 아직 B 선배는 그렇게 좋은 논문은 없구요.

그럼 이제 저는 A 선배처럼 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을까요?
그럴리가요. B 선배도 언젠가 자기의 속도에 맞춰 더 좋은 연구를 게재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그냥 제가 되기로 했습니다.

A 선배처럼, 제 지도교수처럼, 저명한 000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제는 그냥 제 속도에 맞춰서 계속 묵묵히 걸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전 제 삶이 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제 오픈톡 아이디의 '도망쳐'의 숨은 의미가 사실은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도망쳐'라는 권유였던 것입니다.









끝으로, 행복하세요
행복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아무도 본인한테 강요한 사람 없잖아요.
이 간단한 사실을 깨우치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좋아서 했던 일이라면 계속 사랑해주세요. 내 학업도 내 연구도 내 자신도









이 페이지는 연대 후배들만 보시도록 설정된 숨은 페이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본문에 '님'으로 지칭한 부분은 직접 인용을 제외하고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강조하고 싶어 존칭을 생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은 사회'에서 교수 - 학생 / 선배 - 후배는 기본적으로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물안 개구리인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부모님과 사회 구성원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투영해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