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방금 나는 리젝을 받았다
"The positive news is that the majority of the reviewers, the AE, and I continue to believe the topic is interesting...".
리젝을 받았다는 메세지를 보고 나서 메일을 열자 첫 눈에 들어온 문장이었다.
"오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도 아니고 ㅋㅋ... 뒤에 리젝을 주는 이유를 참 여러가지 써놨다...
탑저널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2016년 여름, 처음 이 데이터를 열었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2017년 여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이 연구를 나는 미워도 했었다.
2018년 여름, 외국에서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했고 약간은 우쭐하기도 했지...

2019년 여름, 며칠 밤을 새웠지만 집으로 갈 때 기분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다.
드디어 그 녀석을 보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의 고난을 모른채... ㅋㅋ
그리고 2020년 여름, 나는 험난한 리비전 과정 거쳐 페이퍼를 리젝을 받았다.
3시간 전인 20년 7월 13일 오후 10시 40분...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구나.

1. 처음으로 받은 리젝인데, 생각보다 나는 침착했다.

선배들의 흑화(?)를 봤었고 교수님은 내가 엄청 다크한 모습을 보일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의외로 나는 담담했다.
나는 응원해준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메세지를 보냈고, 다른 페이퍼의 Response Note를 정리하고...
그러다가 졸음이 몰려와 방금전까지는 Reference를 Mendeley에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위로는 많이 받았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았다. 담담한 척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리젝을 받은 이유를 자세히 적어둔 그들의 노트들이 이 논문을 발전시킬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리젝에 관련한 폴더를 만들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내게 교수님은 의외의 말씀을 전했다.
"멘탈 갑"이라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를... 나도 늙었구나(성장했구나)


2. 떨어지면 지원을 미룬 것을 후회할 줄 알았다.

작년에 교수님께서는 라운드가 진행 중에 지원을 하면 더 많은 기회가 열릴거라고 지원을 미루지 말라고 하셨다.
교수님 말씀을 들었다면, 코로나 때문에 비자로 머리는 아팠어도 좋은 대학으로의 출국을 앞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지원을 하지 않고 1년을 미룬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올해 결과가 더 안 좋게(?) 나온다 하더라도.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내 선택이 잘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논문을 작업하는 동안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방금 이 논문 때문에(?) 헤어졌던 여자친구의 얼굴이 잠깐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무언가에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을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랄까

3. 아직은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물론 잘 되었으면 더 좋았겠지... 분명 내게도 기대가 참 많았던 논문이었다.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꽤나 괜찮게 보였거든 (사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사랑한 연구여서가 아니라, 다른 출판된 논문들에 견주어도 그럴싸 한 논문같아 보이는데...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의연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아직은 이 모든 것이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나의 시간이 오면 그 때는 연습이 아니라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련이 그 때의 나에게 더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주겠지...
그래도 Accept 받은 사람들의 논문을 보게 된다면 조금 부러울 것 같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인생을 돌아보게 되면 이 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횡설수설 적어가고 있다. 나중에 보면서 씨익 웃고 싶어서...
오늘 익명의 석사 후배에게 내가 했던 말을 내게 다시 돌려주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A: "석사부터는 석차 확인이 불가능하네여. 학부꺼는 찾아보면 석차까지 나왔는데 역시 코스웍은 신경안쓰는 것인가"
나: "그건 A님께서 공부하시는 길의 일등이자 꼴찌이기 때문입니다... ㅋㅋ 남보다 빨리 간다고 우쭐할 필요도, 천천히 간다고 우울할 필요도 없다고 배웠어요 ㅋㅋ"





아무튼...
더는 내가 기댈 수 있는 구석이 없으니, 더 높은 영어 점수를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시간이 와버렸구나.
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지금은 얼른 자러가야지...